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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리뷰 : 들국화 [들국화 II](제발/내가 찾는 아이) (1986)

숑숑파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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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2년 음악웹진에 기고했던 필자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막다른 길, 방황의 시작

 
들국화의 2집 [들국화 II(제발/내가 찾는 아이)]를 실로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이렇게 ‘흘러간 옛 노래들’에 대한 글쓰기는 ‘그 때는 그랬다’ 식의 후일담이나 산만한 사변을 늘어놓기 쉽다. 
이런 식의 글을 경계하지만, 첫 곡인 “제발”을 들으며 희미한 기억 하나쯤 꺼내놓지 않을 수는 없었다. 술집에서 크게 노래를 불러도 큰 흉이 안되던 시절, 억지스런 목소리로 가끔 불렀던 들국화의 노래가 바로 “제발”이다. 
‘제발 숨막혀 인형이 되긴 / 제발 목말라 / 마음 열어 사랑을 해봐…’ ‘제발’이라는 간곡한 말에서 풍기는 절박한 반항심, 마치 무언가를 향한 욕설처럼 들리는 노래의 느낌은 울분을 토하는 듯한 전인권의 보이스로 인해 배가된다. 
그 때의 치기를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게 “제발”은 답답한 세상과 억압적인 모든 타자에 대해 악다구니 쓰며 외쳐대는 청춘의 송가(?)쯤으로 추억되고 있다.

들국화의 2집에 대한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작과의 비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국 대중음악사 최고 명반의 하나로 꼽히는 이들의 1집이 역설적이게도 이후의 여정에 그늘처럼 드리워진 ‘찬란한 원죄’로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뷔 앨범을 능가하는 작품은 나오지 못했으며, 1집의 성공과 연이은 찬사에 대한 부담감은 밴드의 해체와 이후 계속된 방황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들국화의 2집은 ‘들국화’ 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인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 최구희, 손진태, 이렇게 6명의 안정된 라인업으로 작업한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는 허성욱의 다채로운 건반연주가 중심이 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멤버들의 보컬 하모니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구희와 손진태가 주고받는 트윈 일렉트릭 기타연주는 일체의 과장과 불필요한 장식음을 배제한 채 섬세하고 서정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굳이 빗대어 보자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나 퀸(Queen)의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떠오른다.

또한 애초부터 엇나가기로 작정한 것처럼 앨범 곳곳에 배치해둔 다양한 음악적 시도는 멤버들의 음악적 재능과 자유분방한 감성을 전시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찾는 아이”는 허성욱의 건반연주에 실리는 멤버들의 사랑스런 하모니를 들을 수 있는 성인취향 동요이며, 최성원의 작품인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은 퀸(Queen)의 작법과 하모니를 연상하게 하는 곡으로서 들국화의 음악적 원형이 1970년대 영미 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전인권이 작곡한 “너는”은 극도의 고음으로 치닫는 전인권의 샤우팅 창법이 전율을 느끼게 하며, 변칙적인 구성과 허성욱의 키보드 솔로가 접목되어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의 영향을 감지하게 해주는 실험적인 곡이다.

앨범의 중반부를 차지하는 트랙들은 더욱 이채롭게 들리는데, 최구희의 작품인 “너랑 나랑”과 같은 민요풍 록과 유일하게 주찬권이 작곡한 “또다시 크리스마스”와 같은 캐롤 등이 그것이다. 
“1960년 겨울” 역시 단조의 어쿠스틱 기타연주로 애잔하게 진행되다가 동요 “꼬마 눈사람”으로 끝을 맺는 다소 장난스럽고 황당한 곡이다. 
이러한 이질적 텍스트의 활용은 멤버들 각자의 음악적 스타일을 안배하고 앨범 전체에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임에 분명하지만 심도와 파격미를 갖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앨범을 너무 산만하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한다.

들국화의 2집은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허성욱의 건반연주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가치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면에서 멤버들의 연주기교와 다양한 스타일이 루즈하게 나열되어 있는 범작이며, 결국 척박한 대중음악계에서 운신의 폭을 제한 당한 채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라는 멍에를 쓴 뮤지션들에게 막다른 길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리고 동상이몽을 꾸며 밴드로서의 음악적 비전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멤버들은 각자의 여정을 준비하게 된다. 물론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들의 인연은 들국화의 생명력처럼 질기게 지속되지만 말이다. 
‘난 네가 바라듯 완전하지 못해 / 한낱 외로운 사람일뿐야..’ 그리고 보니 “제발”은 혼란에 사로잡힌 스스로에 대한, 결코 완전히 합일될 수 없는 동료들에 대한 근원적인 원망이자 절박한 호소는 아니었을까?

20020309 작성

 

수록곡 리스트

Side A
1. 제발 (대표곡)
2. 하나는 외로워
3. 너는
4. 너랑 나랑
5. 1960년 겨울
6. 또다시 크리스마스

Side B
1. 내가 찾는 아이
2. 님을 찾으면
3. 여기가
4.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5. 쉽게
6. 조용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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