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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자(Nomad)의 나들이 : 파주슈필과 이세돌 작가

숑숑파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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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페스티벌 파주슈필 참관기

 
일시 : 2024.5.25~26 (2일간)
장소 : 경기 파주시 탄현면 경기미래교육파주캠퍼스(영어마을)
주최 : 코리아보드게임즈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 할 곳을 찾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파주에 사는 필자에게 파주는 비교적 한적하게 쉴만한 명소가 많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어 그저 유랑하듯 떠돌아다녀도 좋은 곳이다.

헤이리의 모던함(그리고 카메라타), 노을지는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의 아름다움, 마장호수 출렁다리의 짜릿함, 율곡수목원의 사계절 변화(파주는 율곡 이이 선생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지 않은 파주에서 오랜만에 큰 이벤트가 열렸다. 보드게임 전시와 체험을 위한 파주슈필이 지난 주말 열렸다. ‘슈필'은 독일의 보드게임 행사인 '에센 슈필'에서 가져온 말로 게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피해 아침에 김밥을 사서 오픈런을 했다.
 

보드게임, 착하고 가성비 좋은 지능 개발 도구

행사에서는 직소퍼즐, 뱅!!, 퀵소, 어콰이어, 이세돌의 게임 그레이트 킹덤 등 70여 종 이상의 게임을 절반에 가까운 큰 할인가로 판매했다. 보드게임 마니아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행사였다.
필자는 사실 보드게임을 잘 모른다. 내가 할 줄 하는 게임은 어렸을 때 했던 부루마블과 8살 아들과 하는 유아용 게임들이 전부이다(여우와 탐정, 우봉고, 에코몬, 치킨차차, 마카롱 스윗홀릭, Cat & Mouse 등등).
 

아들의 보드게임들


하지만 사은품도 받고 보드게임에 뼈져 들고 있는 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즐거운 나들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둑팬인 필자가 좋아하는 이세돌 작가(은퇴 후 게임작가로 전직했는데, 이세돌 사범으로 부르기도 한다)의 토크 콘서트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파주슈필 사은품으로 받은 보드게임 시티 체이스, 꼬꼬미노, 도블

 

AI도 멘탈이 있을까? 컴퓨터도 실수한다

이세돌은 한때 세계 정상을 차지했던, 바둑팬들에겐 너무나 유명한 프로 기사였지만, 사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게임인 알파고와 2016년 세기의 대국을 벌이면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게 된다.
이세돌과 바둑 전문가, 팬들 모두 무한대의 수를 가진 바둑만큼은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수 없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인간이 둔 막대한 기보(고수들의 바둑 기록)를 데이터로 빨아들여 학습하고(딥 러닝하라고 한다), 감정적 흔들림이나 실수가 없는 알파고라는 괴물에게 내리 3번 지게 된다.
 

알파고와 대국중인 이세돌 프로

 

그리고 역사적인 대국으로 남은 2016년 3월 13일의 4국에서 이세돌은 알파고의 기권을 받아내고 바둑에서 AI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된다.
이 대국에서 승기를 잡은 78수 끼워넣기 수는 당시 '신의 한 수'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추후 연구를 통해 상대가 대응이 가능하지만 수를 찾기 어려운 수로 밝혀졌다(이세돌은 스스로 꼼수라고 했다). 하지만 이 수 이후로 알파고는 당황한듯 이상한 수(바둑에선 떡수라 한다)를 남발하며 자멸했다.

알파고와의 제4국, 이세돌 프로의 78수, 상단 중앙 포위된 백돌들을 살리고 흑의 큰집을 파괴한 승부수이다(이미지 출처 : 뉴시스)

 

컴퓨터가 멘붕에 빠지고 버그를 발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 수는 전략적인 승부수이자 명수가 된 것이다. 영화에도 가끔 나오지만 먼 미래 AI와 인간이 전투를 벌인다면, 물리력과 지력에서 인간이 밀릴지라도 버그를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78수는 그런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예술로서의 바둑, 그리고 AI

콘서트는 바둑과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꽤 많이 들어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꽤 많은 질문이 오고갔다. 이세돌 작가는 AI가 바둑계를 점령한 것을 계기로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바둑은 추상전략게임의 대표 게임이다. 우연이나 숨겨진 정보가 없다는 의미이고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언급한 78수처럼 상대방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전략수(꼼수?)는 있다.
 
이세돌은 바둑을 예술로서 배우고 두었다고 했다. 인상적인 말이며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바둑은 인간의 실수와 호흡, 감정의 변화까지도 게임의 일부가 되는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게임이다.
하지만 AI가 바둑을 컴퓨터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보드게임처럼 변했다. 아쉽지만 기술과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이세돌 작가 강연 포스터


이세돌은 이렇게 말했다 “바둑의 권위는 약해졌지만, 권위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 이세돌은 바둑을 응용한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접하고 배우기 어려운 바둑을 대중화하고 어린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보드게임 같은 형식도 좋을 것 같다.

콘서트에서 강연하는 이세돌 작가


필자도 8살 아들에게 바둑을 바로 가르치기 보다는 이세돌이 만든 그레이트 킹덤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권위와 전통을 고집하기 보다는 기술혁신을 인정하고 이를 배워야 한다. 이세돌의 말처럼 AI를 회피한다면 소수가 독점하게 되는 무서운 현실이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이 혼란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 것이고 우리가 다루어야 할 몫인 것이다.

필자에게 이세돌은 바둑의 운명과 AI에 대한 두려움, 또는 기대를 모두 상징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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