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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기다리며 듣는 주옥같은 피아노 소품들 (2)

숑숑파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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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Bach), 시칠리아노

Johann Sebastian Bach, Flute Sonata in E Flat Major, BWV 1031: II. Siciliano (편곡 Kempff)
 
바흐의 [시칠리아노(Siciliano, BWV 1031)]는 플룻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3개의 소나타 중 2악장의 이름이다.
따라서 플룻이나 하프시코드 작품도 많지만, 독일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1895~1991)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후로 피아노 독주곡으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시칠리아노'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농민들의 춤곡에서 유래하여 바흐가 활동한 바로크 시대부터 유행한 장르이다.
특징은 느리고 우아한 선율미인데, 바흐의 [시칠리아노]에서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특히 피아노로 연주하는 시칠리아노는 매우 서정적이며 비장한 느낌마저 전해준다.
 
많은 연주가 알려져 있는데, 편곡자인 켐프의 1955년 연주는 명징한 타건과 담백한 바로크적 해석이 돋보이는 고전으로 당연히 필청해야 한다(1931년 원곡은 음질 문제로 감상이 어렵다). 
천재 피아니스트 키신(Evgeny Kissin)의 청년 시절 연주도 서정성과 현대적 해석이 훌륭하다(2007년에 DG에서 발매된 [Fantasy]에 수록).

Evgeny Kissin, [Fantasy], 2007

국내에서 [시칠리아노]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임윤찬이 독주회 등에서 앙콜곡으로 이곡을 자주 연주하면서부터이다.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2022년 콩쿠르 우승 기념 독주회에서 연주한 버전은 켐프의 고전미와 키신의 서정성을 조화시킨 아름다운 명연이다.
 
임윤찬의 바흐 시칠리아노 연주(2022년, 예술의전당)

 

라벨(Ravel),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Maurice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19 (1899년 작곡)
 
이 곡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근현대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1875~1937)이 1899년 작곡한 피아노 소품이다.
파반느’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느리고 우아한 춤곡 장르로 라벨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바로크시대 스페인 화가)의 작품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Diego Velázquez,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

 

라벨은 이 곡을 1910년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하여 발표하기도 한다. 
관현악 버전은 호른 등 금관으로 연주되는 주선율이 비장하게 느껴지고 다양한 악기들의 앙상블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곡의 제목답게 쓸쓸하고 처연한 서정성이 극대화되는 피아노 독주 버전을 즐겨 듣는다. 이 곡은 단순히 서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변조와 불협화음 같은 인상주의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간단하지 않은 곡이다.
 
물론 원곡자인 라벨의 연주도 음원이 남아 있고, 프랑스 피아노 음악 스페셜리스트인 파스칼 로제(Pascal Rogé)의 1975년 Decca 발매작인 [Ravel: Piano Works]가 유명하다. 국내 연주자라면 백건우의 실황이나 2022년 조성진의 실황연주가 훌륭하다. 

 

Vlado Perlemuter, [ Ravel: Piano Works], 1979

필자가 가장 애청하는 연주는 역시 프랑스 피아니스트인 블라도 펄레뮤터(Vlado Perlemuter, 1904~2002)의 1979년 [Ravel: Piano Works] 수록곡이다. 라벨의 감성은 프랑스 연주자들이 가장 잘 살리는 것 같고, 노장 피아니스트의 관조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블라도 펄레뮤터,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연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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