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여름의 공포영화 추천 (3), 디센트(The Descent)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닌 환각을 다룬 심리 스릴러
필자가 최고의 공포영화의 하나로 꼽는 [디센트(The Descent)]는 2005년에 나온 영국 작품이다(국내는 2007년 개봉).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수작으로 쫄깃한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은 최고 수준이다.
[디센트]는 [헬보이](2019)를 만든 감독 닐 마샬(Neil Marshall)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영화 장르로는 공포 영화의 하위장르인 크리처물(Creature) 계열의 작품이다.
크리처물의 대표작은 괴물의 태생 유형에 따라 외계 괴물이 등장하는 [에일리언], [프레데터] 등이 있고, 자연의 맹수들이 등장하는 [죠스], [아나콘다], [고질라] 시리즈도 여기에 해당한다.
본 영화는 돌연변이류가 등장하는 [미스트], [미믹], 한국 영화 [괴물] 등과 유사한데, 오랜 세월 동굴안에서 돌연변이된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의 어두운 이면
이 영화는 동굴에서 길을 잃고 괴물들의 잔인한 공격에 희생당하는 주인공들의 공포와 그들 사이의 갈등을 그려낸다.
주인공 사라는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는다. 1년 후 사라는 상처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자신을 위로해주려 모인 5명의 친구들과 동굴 탐험에 나서게 된다.
리더인 주노는 알려진 탐험로를 일부러 벗어나 친구들을 점점 깊은 곳으로 이끌어간다(주노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스릴을 즐기려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동굴에서 몸이 끼기도 하고 추락할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 등 무리한 탐험을 이어가던 그들에게 드디어 그놈들이 으스스하게 등장한다.
괴물의 모습은 털이 없이 끈적한 타액으로 덮힌 사람의 형상으로 징그럽지만 덩치도 작고 크게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 눈은 퇴화해서 볼 수는 없지만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고 아주 날렵한 동물로 진화했다.
이제부터 주인공들의 희생이 시작된다. 먼저 부상당한 홀리부터 괴물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괴물들과 혈투를 벌이던 주노가 실수로 베스의 가슴에 아이스 바일(바위나 얼음을 찍는 등산 장비)을 찍어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주노는 베스를 돌보지 않고 도망가고 샘과 레베카가 괴물의 공격을 받자 이들을 구해준다.
한편, 홀로 떨어지게 된 사라는 죽기 직전의 베스를 발견하고 베스는 죽어가며 ‘주노가 나를 찔렀어. 주노를 믿지 마’라고 말하면서 바일에 찔리면서 잡아챈 주노의 목걸이를 건네준다.
목걸이에는 사라의 남편이 자주 했던 말인 "Love each day"가 각인되어 있어 생전에 남편과 주노가 불륜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배신과 불륜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영화는 괴물보다 무섭게 그려낸다.
폐쇄 공간의 환각과 절망적인 꿈
이제부터 사라는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는 여전사가 되어 괴물들을 때려잡고 주노를 찾아나선다. 한편, 샘과 레베카는 괴물들에게 잔인하게 물어뜯기게 되고 주노 혼자 살아남아 사라와 마주치게 된다.
둘은 환상의 무력으로 괴물들을 물리치는데, 평소 익스트림 스포츠를 해온 여주인공들이 쎈 건 그렇다 치고 괴물들이 너무 약하게 설정되어 다소 시시하다.
어쨌든 다시 괴물들이 몰려들자 사라는 주노에게 목걸이를 보여주고 바일로 다리를 찍어버리고 도망친다. 직접 죽이는 복수보다 괴물들에게 잔인하게 당하는 고통으로 응징한 것이다.
사라는 도망치다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읽게 되는데 환한 빛에 깨어나 탈출구를 발견하고 동굴을 벗어나게 된다. 차를 몰고 가다 잠시 멈춰 오열하던 사라는 차창 밖에 주노가 나타나자 비명을 지르며 다시 꿈에서 깨어난다.
어느 것이 현실일까. 꿈속의 꿈을 설정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 영화의 반전이자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장면이다.
사라는 어여쁜 딸의 환영을 보며 몰려드는 괴물 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사라는 여전히 동굴에 있었던 것이다.
괴물이나 동굴의 공포보다도 이 환영과 주인공의 모습이 더욱 절망적이고 무섭게 느껴진다.
상처와 고통을 벗어나려는 환각을 그린 아름다운 공포영화
영화의 배경인 동굴 내부는 폐쇄공포증을 자극하고 몸과 마음을 옥죄는 공간이다. 여기에 징그럽고 무서운 괴물들이 등장한다면 그 공포는 최대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굴의 폐쇄성과 괴물의 공격이라는 직선적인 공포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사이의 배신과 갈등구조를 중층으로 배치하여 단순함을 벗어난다.
디센트(descent)는 하강이라는 뜻으로 로프를 타고 동굴로 내려간 주인공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추락이라는 뜻도 있어 주인공들의 죽음과 사라의 절망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2009년 개봉된 후속작인 [The Descent: Part 2]는 사라가 구조 대원들과 함께 실종된 5명의 친구를 찾으러 다시 동굴로 들어가서 괴물들의 실체를 밝힌다는 내용인데, 사족 같은 느낌이고 긴장감도 떨어지는 범작이다.
어떤 이들은 사라가 탈출한 것이 현실이고 잠시 차에서 정신을 잃고 다시 동굴에 갇혀 있는 꿈을 꾼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주인공 사라가 등장하는 후속작을 고려하면 이 해석이 일면 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괴물의 존재와 친구들의 희생을 포함하여 스토리 전부를 정신병을 앓는 사라의 환각과 꿈으로 보는 게 더 영화답고 무서울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큰 상처와 고통에 빠진 인간이 환각을 통해서라도 현실을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은 어찌보면 아름답게 다가온다.
P.S 참고로 폐쇄된 탄광을 모험하는 심리 호러 워킹 시뮬레이션 게임인 [The Descent]도 있는데 이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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