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탈주(Escape), 2024
[영화 개요]
- 감독 : 이종필
- 주연 : 이제훈, 구교환 등
- 장르 : 액션, 스릴러
- 개봉일 :2024.07.03
- 상영시간 : 94분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국내 총관객수 : 약 256만명(2024년 8월말 기준)
- 감상(OTT) : 애플TV, 쿠팡플레이, WATCHA, 시리즈온 등
북한 내부를 묘사한 과감한 상상력
올해 9월말까지 한국영화 흥행순위는 [파묘](1,191만), [범죄도시4](1,150만), [파일럿](455만) 순이다. 천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탄생했으니 올해 한국영화의 성적은 나쁘지 않다.
4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탈주](256만)인데, 탑클래스급이 아닌 주연들의 스타 파워와 85억의 비교적 검소한 제작비를 고려하면 의외의 성공이라 할만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거의 모든 스토리와 장면이 북한 내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북한 관련 영화는 남한 내부에 침투하거나 제3국을 배경으로 북한 공작원이나 군인 등이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영화 [쉬리], [공작], [용의자]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도 많이 오픈되었고 남한과 큰 차이가 없을 군대를 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과감한 시도는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막사나 초소 등은 현실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황량한 비포장도로의 모습, 고위급 북한 장교들의 파티 장면, 여성 유랑민에 대한 묘사는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각본을 맡은 권성휘는 영화 [공작](2018)과 드라마 [수리남](2022)을 썼다고 하는데, 첩보물이나 르와르 장르의 긴장감 있는 스토리를 잘 구성하는 것 같다.
감독은 이종필로 2007년 데뷔 후 단편이나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고 영화 [아저씨]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크게 알려지진 않았던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의 성공 이후 이 영화를 통해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해 향후 행보를 기대하게 된다.
숨가쁘고 절망적인 명품 추격 씬의 탄생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단순하고 반전도 없다. 러닝타임도 94분에 불과하다. 제목 자체가 말해주듯 남한으로 월남하려는 북한 탈영군인의 도주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잘 짜여진 ‘추격 씬(chase scene)’에서 발휘된다.
한국 영화에서 추격 씬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추격자], [감시자들] 정도가 떠오른다. 긴장감 측면에서는 이 영화들의 추격 씬도 훌륭하다.
[탈주]의 추격 씬이 더 압도적인 것은 ‘잡으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니라 추격자의 ‘놓아주고 싶은 마음’과 ‘붙잡으려는 마음’ 사이의 갈등이 개입한다는 점과 주인공들의 애증 어린 심리적 갈등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추격 씬은 감상자의 숨을 가쁘게 하고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되게 하여 슬프게 느껴진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절망의 극한으로 치닫는 명품 추격 씬이 탄생했다.
한편, 복잡한 스토리나 스케일 큰 액션 씬이 없음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두 배우의 불꽃튀는 연기 대결 때문이다. 이제훈은 꽃미남과도 아니고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감정선이 잘 드러나고 절제된 연기력을 보여준다.
[건축학개론]에서 보여준 아련한 청춘의 느낌도 좋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그려낸 땀냄새 나는 탈주자이자 자유를 향해 목숨을 거는 규남의 모습은 울림이 크다.
보위부 장교인 리현상으로 분한 구교환의 연기 또한 압권이다. 구교환은 북한군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인 투박한 모습이 아니라 치밀하고 예술가적이며, 잔인하면서도 애잔한 빌런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장담하건데 구교환은 한국영화의 탑클래스 연기파 주연으로 성장할 것 같다.
실패할 자유? 어설픈 희망을 주입하려는 메시지의 거북함
화려한 미장센, 스릴 넘치는 추격 씬, 두 배우의 명품 연기 만으로도 이 영화는 수작이다. 굳이 평점을 매기자면 별다섯개 만점에 별3개반은 줄 수 있다.
다만 일부에서 지적하는, 송강이 연기한 선우민이라는 인물의 모호함은 걸리는 부분이다. 선우민과 리현상의 연인관계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던데, 맞든 틀리든 불필요한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선우민이라는 인물이 왜 나와야 하는지 설득력도 떨어진다.
메시지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반드시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너무 뻔하거나 편향적이면 문제가 된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억압 속에 살아가는 북한 청년의 꿈이 남한의 자유’라고 설정한다. 리현상의 말대로 남한도 지상낙원이 아니고 실패할 것이라 경고하지만, 규남은 ‘실패할 자유’라도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여기선 실패조차 할 수 없으니...내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
북한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계급적 구속은 끔찍한 것이지만, 살벌한 경쟁과 양극화로 치닫는 남한의 왜곡된 자본주의 역시 또다른 지옥일 것이다. 규남의 ‘실패할 자유’는 꿈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반복된 실패는 절망일 뿐일 것이다.
영화는 한강대교를 걷던 규남이 은행로부터 청년창업 자금 대출 신청이 승인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보고 기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한국영화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마무리하려는 강박관념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사족으로 느껴진다.
그저 담담하고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서울의 밤거리를 걷는 규남의 모습으로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물론 감상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감정을 보장하는 열린 결말을 선호하는 필자 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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